오래전에 KBS의 역사스페셜 이것은 꼭 봅니다. 그 중 역사 발굴! 어느 임란포로의 비밀편지 라는 제목의 방송이 있었읍니다.
저는 수년전 여씨들이 여대남 일요상인을 추모하는 것을 보고 저는 심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임진왜란 그 때 남의 나라 물론 고조선시대 삼국시대까지 포함하면 남도 아니겠으나. 남의 나라 끌려가서 천대받고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종선조분을 추모하며 통곡하는 것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시조 이양식 할아버지의 17세손인 병마절도사 충장공 이복남 장군 할아버지에게는 세명의 아들. 문헌상에 기록된 것만 보면 세명의 아들이 계셨읍니다. 그밖의 사정은 우리가 어떻게 감히알겠어요? 충장공 이복남 장군 할아버지의 셋째아들인 이경보 李慶寶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또는 정유재란 당시 8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납치되어 온갖 천대를 받고 멸시받다가 돌아가셨더이다. 그래도 다행히 현지에서 후손을 보시고 제사상을 받고 누군가는 기억하니 천만 다행입디다. 하지만 우계이가들 중 누구도 그 고달프고 서러우셨을 이경보 우리 경보 할아버지를 추모하며 눈물흘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살 15살 16살에 어린 나이에 공장 가서 고생했다고 그것으로 나이 쉰살이나 칠순이 되도록 그것을 잊지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보 할아버지는 8살의 어린 나이에 납치되었습니다 저도 힘든 일을 하다보니 처음에는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몇년 지나니 그 프로그램을 우연히 생각하고보니 경보 할아버지가 생각나더이다. 일년 아니 십년에 한번쯤은 우리 일가가 경보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한번쯤은 울어줄 사람이 그렇게나 없었던가 싶었습니다. 지금의 일본을 미워하자는게 아닙니다. 다만 왜 우리는 일년에 하루 정도는 경보 할아버지를 슬퍼하고 눈물흘리지도 아니하고 제사 한번 지내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충장공은 이미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남원성에서 순국하셨습니다만 그의 부인 청주한씨 한곤의 따님은 얼마나 속이 쓰렸으려나. 왕조실록을 보더라도 말입니다.